제목
: [인터뷰] 오목.. 그 편견을 넘어
작성자
: administrator
작성일
: 09-02-25 10:06:5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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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네모칸이 그어진 메모지나 책받침은 좋은 놀잇감이었다.
옆자리의 짝꿍과 색깔이 다른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오목을 둘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교과서로 선생님의 시야를 가려놓고 오목을 두던 기억이 독자들도 한번 쯤은 있을 것이다.
‘쌍삼’을 써먹는 야비한 친구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던 추억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테고 말이다.




국내 오목 1인자 박정호 8단


박정호씨는 국내 오목 일인자다. 단수로는 국내 최고수인 공인 5단이다. 아마 4단인 바둑보다 단수가 높다. 2001년에 일본에서 열린 오목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정호씨는 속기전(대국자 당 12분의 시간 제한을 두는 방식)에 참가해 55명중 8위를 했다.

2002년 제2회 게임위드 오목리그 우승, 제4회 MSO(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드) 오목대회 준우승, 2003년 MSO 오목대회 우승 등 박정호씨는 명실상부한 국내 정상의 오목 기사다.

박정호씨는 1999년에 명지대 바둑학과에 입학했다. 현재 정호씨는 20대 후반의 나이로 동기들보단 나이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학년은 아직 2학년이다. 2000년 가을에 휴학을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박정호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바둑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그에게 바둑은 그저 취미생활이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을 들어가지 않았던 박정호씨가 명지대에 바둑학과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1998년. 그 당시 명지대 바둑학과는 1997년에 생긴 신설 과였으며 국내 유일이었다. 박정호씨는 자신의 적성이 바둑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이듬해 바둑학과에 입학했다. 입시에는 수능시험과 실기평가가 반영됐다.

[‘오목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

박정호씨가 오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MSO 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다. 오목은 운이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실력자가 많은 바둑에 비하면 당시 오목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호씨의 결심에 주위의 반응은 냉담했다. 동기들에게서 무시받는 듯한 분위기도 느꼈다. “제가 휴학할 때도 교수님께 오목을 두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교수님은 이해해 줄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죠.”

박정호씨는 현재 오목협회장인 김종수씨와 2002년 11월에 ‘한국오목협회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2002년 12월에는 한국오목협회 홈페이지(www.omok.or.kr)도 문을 열었다.
한국오목협회는 현재 국내 각종 오목대회의 주최와 오목규칙의 통일 등에 힘쓰고 있다. 2001년 8월에 세계오목협회 가입된 후로 2년마다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와 팀세계챔피언십에 선수들을 출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오목은 아직 문화관광부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세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선 모든 비용을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박정호씨도 2001년 일본에 갔을 때 11일 간의 체류 경비를 스스로 부담했다.
“문화관광부에 오목이 등록이 되면 스폰서 조달도 가능하죠. 또 기사들의 입상 경력도 인정이 될 것이고 오목협회도 공신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오목협회에 가입한 나라들의 오목 저변은 어떨까. 실력면에서는 일본을 제외하곤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어린이들도 오목을 즐겨 두지만 외국의 경우 마니아 층 중심으로 두는 편이다. 유럽에서는 오목을 놀이가 아닌 두뇌스포츠‘로 인정한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바둑과 같은 대접을 받는 유럽의 오목이 박정호씨는 부럽기만 하다.

일본에는 오목 최고수인 9단이 10여명 있다. 국내에는 두 명의 5단이 최고수로 꼽힌다. 오목은 세계랭킹이 높은 것보다 메인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박정호씨는 설명했다.

박정호씨는 오목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는 편견을 많이 접했다. ‘오목을 왜 두느냐?’, ‘오목은 머리 식힐 때 두는 것 아니냐?’는 말을 주로 들었다. 공식 오목판 규격이 바둑판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바둑판은 가로 세로 19줄인 반면, 오목판은 15줄이 공식 규격이다. “바둑판에서 오목을 둘 경우 먼저 두는 사람(흑)이 무조건 이긴다”는 박정호씨의 말에 리포터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처음 오목이 등장했을 때는 가로 세로 15줄의 오목판을 모니터에서 볼 수 없었다. 점차 오목 마니아 층이 생기면서 공식 규격에 맞는 오목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박정호씨는 외국 인터넷 오목 사이트를 많이 찾는다. 숫자면에선 일본 사이트가 많지만 디자인이 좋은 중국 사이트의 인기가 많다. 그렇다고 정호씨가 온라인 대국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반상 앞에 직접 마주앉아 치르는 대국을 좋아한다.

온라인에서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부정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대국 중간에 나가는 등 ‘대국 매너’가 부족한 경우도 자주 있다.

“상대방이 시간을 많이 썼는데 좋은 행마가 나오면 의심이 들죠. 그런 경우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경우가 많아요.”
또 오목은 속도전이 특징이라 6개월 배운 사람이 5년 배운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경기다. 한두 번 이긴 뒤에 ‘실력이 그것 밖에 안 되냐’며 우쭐대는 사람도 박정호씨는 질색이다.

 


 
 


오목을 둘 수 있어 행복하다.



[집중하는 자가 이긴다 ]
박정호씨가 한창 오목에 빠져 있던 2000년 즈음에는 하루 평균 7~8시간 연습을 했다. 집중이 잘 되는 밤에 주로 연습을 했고 밤도 많이 샜다. 지금은 대국을 자제하는 편이다. 대신 기보 검색을 많이 한다.

한국오목협회는 서울 영등포에 있는 자스미 기원에서 격주로 모임을 갖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이 모이는 그곳에서 박정호씨는 오목 강의도 맡고 있다. 모임이 있을 때면 기원에 있는 아저씨들이 그들을 신기한다는 듯이 쳐다보기도 한다고.

인터뷰 동안에 몇 개비의 담배를 피우던 그에게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 물어봤다. 정호씨는 라이벌이라고 여기는 상대에게 졌을 때나 자신이 연패에 빠졌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전국 대회에서 초반에 탈락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정호씨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바둑을 두거나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는 것이다. 흡연은 대국 중에는 하지 않는다. 집중을 위해서다.

박정호씨가 꼽은 오목의 매력은 속도와 집중이었다. 바둑은 처음에 배우기 어렵고 대국시간이 길다. 오목은 쉽게 배울 수 있지만 규칙을 알고 보면 무작정 쉬운 것은 아니다. 잘 두는 사람끼리 오목을 둘 경우 한시간 이상 씨름을 하기도 한다.
또한 오목은 바둑에 비해 속도전 성격이 짙다. 온라인이나 모바일 게임에서 보듯 젊은 층에 친숙하게 어필할 수 있다.
“오목은 집중력 향상에도 좋아요. 바둑은 여러 곳을 신경써야 하지만 오목은 한 곳을 집중해서 봐야 하거든요.”



[오목은 심심풀이가 아니다]

박정호씨의 꿈은 해외바둑지도사이다. 오목에 대한 애정에 가려 있었지만 그의 전공은 바둑이다. 바둑 실력도 학과 내에선 중간 쯤이지만 일반인들이 호락호락 여길 상대는 아니다. 그는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한 후에 오목을 그만두려고 생각 중이다.

“이후에는 유럽에 가서 바둑을 보급하고 싶어요. 바둑 학원을 차릴 수도 있고요. 오목에 뜻이 있는 후배를 키워놓고 가야 되는데 다들 집중적으로 배울 생각이 없나봐요.”

마지막으로 박정호씨는 오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를 바랬다. 오목이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 놀이라는 생각은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스, 장기와 같이 정석이 존재하고 수읽기가 좋아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오목임을 그는 강조했다.

박정호씨를 인터뷰 하기 전 ‘너무 과묵한 사람’일 거라는 판단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허나 수읽기를 하듯 침착히 내뱉은 그의 말들이 독자들의 고정관념 하나를 무너뜨리는 일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게 아닐까.
 
 
 
글 김홍섭 / 사진 장우성
출처 : 사고의 위(胃) 블로그 http://blog.naver.com/wide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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